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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최대한 본래 반가사유상이 가지고 있는 정교함과 잔잔한 미소를 살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ㆍ재     질 :   주석, 나무좌대
ㆍ크     기 :   18*7.5cm
ㆍ포 장 재 :   

ㆍ판 매 가 :   93,000원
ㆍ수     량 :   


전화 상담ㆍ주문 041-837-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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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동미륵보살반가상 (국보 83호)

  국내 최대의 금동제 반가상으로 그 높이가 93.5cm에 달하고 우리나라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선덕여왕의 20세 전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추정되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이 금동상은 일제 초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은밀하게
약탈되어 곧 서울로 옮겨져 그 당시 문을 연 이오아가박물관에 매도한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 출토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으나, 1920년대에 경주 남산 서쪽 산록의 선방골 곧 배리 삼존석불(보물 제 63호)이 서 있는 부근에서 출퇴 되었다는 설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본다. 그러나 그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한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 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음어진 고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쪽 다리를 반대편의 무릎 위에 얹은 사유의 상으로 6세기부터 7세기 무렵
초기 불교 전래 시기의 삼국에서 만들어져, 삼국통일 초기까지만 유행했던 독특한 양식의 불상이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반가양식과 사유양식을 합하여 부르는 말인데, 반가양식은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발하나
(오른쪽)를 올려서 다른쪽 다리 무릎에 얹고 있는 모습을 말하고, 사유양식은 오른손을 들어 손끝에 턱을 댐으로써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을 말한다.

 인도에서 처음 조성되기 시작한 반가사유상은, 석가여래가 젊어서 왕궁을 빠져나와 속세로 들어가 수도를 하면서
깊은 사유에 잠겼던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는 태자상이었으며, 중국에도 역시 태자상으로 처음 들어왔으나 점차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이같은 불상이 용수보살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우리 한반도의 삼국에 들어와서는 당시 크게
유행하던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그 보살상을 조성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륵보살은 미를불로 화현하기 전까지
하늘에서 수도하고 있는 보살을 말하는데, 미륵불은 아득히 먼 미래에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제도한다는 불교의
메시아(救世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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