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百濟)얇은 은판(銀板)의 주간(主幹)상부와 양쪽에 2단으로 좌우로 뻗어 꽃봉오리가 위로 향하게 대칭으로 만들어 오린 후 중심선에서 세로로 접어 비단으로 만든 관(冠)에 꽂게 되었다. 이 관식(冠飾)의 꽃봉오리모양은 가야지역의 지산동(池山洞) 제 32호분 출토 금동관(金銅冠)의 입식(立飾)상부와 상이하다. 이 은제관식과 유사한 것은 부여
하황리(下黃里),나주 흥덕리(興德里).남원 척문리(尺門里)고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신당서(新堂書>> 동이전(東夷傳) 백제조(百濟條)에 "왕복(王服).....오나관식이금(烏羅冠飾以金)위 군신강의(群臣絳衣) 식관이은(飾冠以銀)위"와 <<북사(北史)>> 동이전 백제지국조(百濟之國條)에 "육품이상관식은화(六品已上冠飾銀花)"라 하여 왕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에 금꽃을 장식하고 군신 특히 육품 내율(奈率)이상은 은꽃으로 장식한다는 기록과 일치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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